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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 4 장 성경의 전기 (2006.05.29-10:40:52) Modify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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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성경의 전기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히 11:33, 34)

성경 중에 전기가 담겨 있는 부분만큼 교육적으로 더 가치가 있는 부분은 없다. 이 전기들은 있는 그대로의 생애를 기록한 점에서 세상의 다른 모든 전기들과 같지 않다. 사람의 유한한 두뇌를 가지고서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꼭 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고 동기와 행위의 숨은 원천을 분별하시는 하나님만이 인격과 생애를 절대적으로 진실하고 충실하게 묘사하실 수 있다. 이런 묘사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찾을 수 있다.
사람의 행위는 그 사람 됨됨이의 결과라는 것보다 성경에서 더 명백히 가르치는 진리는 없다. 우리의 생애 동안 이루어지는 경험의 대부분은 우리 자신의 사상과 행위의 열매인 것이다.
“까닭 없는 저주는 … 이르지 아니하느니라”(잠 26:2).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부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0, 11).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렘 6:19).
이 진리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므로 깊이 명심해야 한다. 모든 행위는 반드시 그 행한 자에게 돌아온다. 자신의 생애를 괴롭히는 불행들은 자신이 뿌린 씨가 맺은 열매임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럴지라도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이미 자신의 것이었던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하여 기만에 호소하였고, 그 결과 형의 증오라는 수확을 거두었다. 그는 이십 년 동안 유랑 생활을 하면서 부당한 취급을 받고 속임을 당했으며, 나중에는 몸의 안전을 위해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의 성격의 악한 면이 그 아들들 속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에는 두번째 수확을 거두었다. 이것은 모두 인생에 보응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사 57:16-19).
야곱은 고난 중에 압도당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회개하고 자기 형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분노한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 위험을 느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다.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호 12:4),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창 32:29). 죄 사함을 받은 야곱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더 이상 대신 들어앉는 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한 왕자로서 일어섰다. 그는 단순히 그의 격노한 형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구원함을 받았다. 그의 본성에 있던 악의 세력은 깨어지고, 그의 품성은 변화되었다.
만년에도 빛이 있었다. 야곱은 자기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붙드시는 능력 곧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창 48:15, 16)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야곱의 아들들의 역사 가운데서도 죄는 보응을 가져 오고 회개는 생명에 이르는 의의 열매를 맺는 그 동일한 경험이 되풀이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폐지시키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율법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의 행위를 원상 복구시키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저주가 복이 되는 것이다.
* *
야곱의 아들 중에 레위는 매우 잔인하고 복수심이 강한 사람 중 하나였고 세겜 사람들을 속여서 죽이는 일에 가장 죄가 큰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 자손들에게 그대로 나타난 레위의 특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7)라는 선고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회개는 개혁을 일으켰고, 다른 지파들의 배도 중에서 하나님께 충성을 지켰으므로, 그 저주는 가장 큰 영광의 증거로 바뀌어졌다.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신 10:8).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말 2:5, 6).
성소의 봉사에 임명된 봉사자들인 레위 지파는 토지의 분깃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을 위하여 구별하여 놓은 성읍에 모여 살면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드려진 십일조와 헌물들로 부양되었다. 그들은 백성들의 교사가 되었으며, 모든 제례(祭禮)에 손님으로 초청 받았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종과 대표자로 존경을 받았다. 전국 백성들이 받은 명령은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 인을 저버리지말지니라”(신 12:19),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신 10:9)고 하는 말씀이었다.
믿음으로 정복함
우리는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잠 23:7)하다는 진리의 다른 한 실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나안의 변방에서 정탐꾼들은 그 나라를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였다. 그들은 그 땅을 점령할 때 겪을 고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땅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잊어버렸다. 하늘 높이 솟은 성벽으로 둘린 도성들, 거인 전사들, 철병거들을 보고 그들의 믿음은 위압당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논외로 버려둔 채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 13:31)고 하는 믿음이 없는 정탐꾼들의 단정을 꼭 같이 되풀이하였다. 그들의 말은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그들은 올라갈 수 없었고, 사막에서 그들의 생애를 소비하였다.
그러나, 그 땅을 본 열 둘 중에서 둘만은 그와는 다른 의견을 말하였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고 역설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거인이나, 성벽을 두른 성이나, 철병거보다 우세하다고 간주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40 년간의 방랑을 함께 나누었으나 약속된 땅에 들어갔다. 여호와의 군대와 더불어 애굽을 떠날 때에 가졌던 것과 같은 용감한 마음을 가지고, 갈렙은 거인들의 요새를 그의 분깃으로 달라고 하여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냈다. 그의 발로 걸어 다녔던 포도원과 감람나무 숲은 그의 소유가 되었다. 겁장이와 반역자들은 광야에서 멸망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에스골의 포도를 먹었다.
옳은 길에서 단 한 번이라 할지라도 이탈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은 물론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만큼 성경이 더 극명하게 보여 주는 진리도 없다. 모본은 기이한 능력을 가졌다. 우리의 본성의 나쁜 성향 쪽으로 모본이 끼쳐지면, 그것은 거의 저항할 수 없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악덕의 “요새”는 버림받은 죄인이나 비열한 부랑자의 사악한 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고, 표면으로는 덕이 있고 존경할 만하고 고상하게 보이지만 생애 가운데 한 가지 죄를 품고 한 가지 악덕에 빠져 있는 사람의 생활이다. 어떤 큰 유혹에 대항하여 남 모르는 싸움을 하며 벼랑 끝에서 떨고 있는 영혼에게는, 그런 모본이 죄를 짓게 하는 가장 강력한 유혹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인생과 진리와 명예에 대한 높은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중 하나를 고의로 범하는 자는 자기가 받은 고상한 은사들을, 죄를 범하게 하는 유혹 거리가 되게 하였다. 천부적 재능, 재주, 동정, 관대하고 친절한 행동까지라도 그같이 영혼을 파멸의 절벽으로 유인하는 사단의 미끼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단 한 번의 그릇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를 보여 주는 매우 많은 실례를 주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에 죽음을 들여오고, 에덴을 상실케 하고, 온갖 비애를 가져 온 한 범죄의 슬픈 이야기로부터, 은 30에 영광의 주님을 팔아 버린 사람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전기는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하는 곁길들에 경고의 표지로 세운 이런 실례들이 많이있다.
* *
사람의 연약함과 잘못에 단 한 번 굴복함으로써 생긴 결과, 곧 믿음에서 떠남으로 생기는 결과를 주목하는 데서도 우리는 경고를 받는다.
엘리야는 단 한 번 믿음의 실패로 필생의 사업을 단축시켰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그가 진 짐은 무거웠었다. 전국적인 우상 숭배에 대한 그의 경고는 충실했었다. 삼 년 반에 걸친 기근 동안에 어떤 회개의 증거가 나타나기를 주목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심려는 깊었었다. 그는 홀로 하나님을 대표하여 갈멜 산에 섰다. 믿음의 힘으로 우상 숭배는 타파되었고, 복된 비는 이스라엘에 퍼부어지기를 기다리던 축복의 소낙비를 증거하였다. 그는 피로로 약해졌을 때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 흘로 광야로 도망하여 그의 생명을 취해 가시도록 기도하였다. 그의 믿음은 약해졌었다. 그가 시작한 사업을 그는 마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도록 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의 진실된 봉사를 주목하셨다. 엘리야는 광야에서 낙담과 고독 속에 죽을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덤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으로 승천할 것이었다.
이러한 인생 기록들은 모든 인류가 언젠가 깨닫게 될 사실, 곧 죄는 수치와 손실만을 가져 올 뿐이며 불신은 실패를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가장 깊은 데까지 미치고,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양자 됨에 참여하도록 회개하는 영혼을 높인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고난의 훈련
세상에서 하나님과 인류를 위하여 참된 봉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슬픔의 학교에서 예비 훈련을 받는다. 책임이 중하면 중할수록, 봉사의 직임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시험은 더욱 더 철저하고 그 단련은 더욱 혹독하다.
요셉, 모세, 다니엘, 다윗의 경험들을 연구하라. 다윗의 어린 시절과 솔로몬의 생애를 서로 비교하고, 그 결과를 숙고해 보라.
다윗은 청년 시절 사울과 더불어 친밀히 교제하였다. 그는 궁정에 머물면서 왕가의 사람들과 친분을 맺는 동안, 왕족의 찬란함과 화려함 속에 감추인 염려와 슬픔과 당혹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는 영혼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는 데 인간의 영화가 얼마나 무익한지를 보았다. 그리하여, 왕의 궁정에서 목장의 양무리에게로 돌아올 때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꼈다.
사울 왕의 질투로 광야로 쫓겨간 도망자 다윗은,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으로부터 차단되었을 때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의뢰하였다. 광야 생활의 불안과 불확실함, 계속적인 위험과 빈번히 도망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그에게로 모여 든 사람들의 특성-“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삼상 22:2)들,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 엄격한 자기 훈련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경험은 사람을 다루는 능력과, 압제받는 자에 대한 동정과 불의에 대한 증오심을 일깨워 발전시켰다. 기다림과 위험의 여러 해를 통해 다윗은 안위와 지지(支持)와 생명을 하나님 안에서 찾기를 배웠다. 그는, 그분의 능력에 의해서만 그가 왕좌에 나아갈 수 있음과, 그분의 지혜를 구함으로써만 현명한 통치를 할 수 있음을 배웠다. 다윗이, 비록 후년에 큰 죄로 손상을 입히기는 하였으나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삼하 8:15)하였다는 경력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 고난과 슬픔의 학교에서 받은 훈련 때문이었다.
솔로몬의 훈련은 다윗이 초년 시절에 경험한 훈련에 비해 부족하였다. 환경과 품성, 그리고 생활에 있어서,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혜택을 받은 듯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솔로몬은 고귀한 몸으로 태어나 소년기를 보내고, 성인이 되어 큰 번영과 영광이 약속된 통치자의 지위에 올랐다. 여러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사람의 지식과 통찰력에 경탄하였다. 그러나, 번영에 대한 교만은 결국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기쁨을 떠나 관능적인 쾌락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돌아섰다. 그는 이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 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전 2:4-12, 17, 18).
솔로몬은 자기의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세속적 사물에서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찾는 생활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교의 신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나, 소위 영혼에게 평안을 준다는 그 신들의 약속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배웠을 뿐이었다.
만년에, 솔로몬은 이 세상의 터진 웅덩이에서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피곤하여, 마침내 생명 샘에서 마시기 위하여 돌아왔다.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후세대를 위하여 자기가 헛되이 보낸 세월의 역사를 경고의 교훈과 함께 기록하였다. 그리하여, 비록 그의 백성들이 그가 뿌린 씨로 악의 수확을 거두었으나, 그의 평생 사업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필경에는 고난의 단련이 그를 위하여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고난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교훈들을 솔로몬이 만일 젊어서 배웠었더라면, 그렇게 훌륭하게 출발한 그의 인생의 대낮이 얼마나 더 영광스러웠었을까!
욥의 시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롬 8:28) 성경의 전기가 고난의 역할에 대하여 더욱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사 43:12). 우리는 그분이 선하신 것과 그 선하심이 한량없다는 것에 대한 증인들이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하나님의 나라의 원칙인 무아의 정신은 사단이 미워하는 것이다. 그는 무아의 정신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대쟁투가 시작된 이래, 사단은 하나님의 행위의 원칙들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해 왔을 뿐 아니라, 그분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와 동일한 태도로 대하고 있다. 사단의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사업이요, 또한 그분의 이름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당신의 생애를 통해 친히 이 무아의 정신의 실례를 보이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이 원칙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실제 생활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는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한 동역자들이 되어야 한다. 옳기 때문에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어떠한 희생이나 고난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는 것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7).
세상 역사의 아주 초기에 사단의 이 같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의 일생을 적어 놓은 기록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스의 족장 욥에 대하여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고 증언하셨다.
사단은 이 사람에 대하여 경멸적인 비난을 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9-11).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욥 2:6)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허락을 받은 사단은 욥의 모든 소유물, 즉 가축들과 양떼들과, 남녀 종들과 자녀들을 쓸어가 버리고,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욥 2:7) 하였다.
그러고도 욥의 잔에 쓴 성분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역경을 죄의 보응으로 밖에 생각지 않는 그의 친구들은 그의 악행을 비난함으로, 상하고 고뇌하는 그의 영혼을 짓눌렀다.
하늘과 땅 모두에게 버림받은 듯이 보이는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과 그가 성실했다는 의식을 굳게 붙잡고 욥은 고뇌와 당혹 가운데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욥 10:1, 14:13).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지라도 신원함이 없구나 …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 …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욥 19:7-21).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난외 주)”(욥 23:3-10, 13:1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욥 19:25-27).

욥이 믿은 대로 그에게 그렇게 되었다. 그는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하였다.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끈기와 인내로 자신의 품성을 옹호하였고, 그리함으로 그가 대표하고 있던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욥 42:10-12).
* *
자기 희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들의 기록에 두 사람 구약에 한 사람, 신약에 한 사람의 이름 곧 요나단과 침례 요한의 이름이 있다.
세자(世子)로 태어난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자기가 제쳐진 바 된 것을 알고는 경쟁자에게 친구로서 가장 친절하게 충실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였고, 자기 아버지의 세력이 쇠하여 가는 음울한 시기 내내 그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아니하다가 결국 그 옆에서 죽었다. 요나단의 이름은 하늘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으며, 그의 이름은 이 땅에서 이타적인 사랑의 존재와 힘에 대한 증인으로 서 있다.
침례 요한이 “메시아”의 선구자로 나타나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큰 무리가 그를 좇았다. 그러나, 그가 증거해 왔던 분께서 등장하시자 모든 것이 일변하였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따랐으며, 요한의 일은 신속히 그 종말을 고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동요되지 않았다.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말하였다.
시간이 지나가도, 요한이 확신을 가지고 기대하던 왕국은 건설되지 않았다. 헤롯의 지하 감옥에서 신선한 공기와 광야의 자유로부터 차단된 채, 그는 주목하며 기다렸다.
무력의 시위나 옥문을 깨뜨리는 일은 없었으나,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들의 심령을 고상하게 하는 일들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증거하였다.
홀로 지하 감옥에서, 그의 선생의 길과 같이, 그의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내다보고 요한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희생에 동참하는 신임(信任)을 받아들였다. 하늘의 천사들은 그가 죽을 때까지 그를 보살폈다. 타락한 세계나 그렇지 않은 세계를 물론하고, 온 우주의 지적 존재들은 모두 그가 무아의 봉사를 옹호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그 이후 각 시대를 내려오면서, 고통하는 심령들은 요한의 생애의 증거를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견디었다. 암흑의 여러 세기를 통해 지하 감옥에서, 단두대에서, 화염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힘을 얻었던 것이다.
* *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32-40).
”-교육, 14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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