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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 6 장 성경의 신비 (2006.05.29-10:59:05) Modify Delete
 819 - 번째 접속


제 6 장 성경의 신비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 … 겠느냐”(욥 11:7)

인간의 유한한 정신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품성이나 그 사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연구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가장 우둔하고 무지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열심 있고 교양 있는 사람에게도 거룩하신 하나님은 오묘로 가리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지만,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우리는 한없는 자비가 무한한 능력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큼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전능하신 손과 사랑으로 충만한 그분의 마음에 의뢰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저자이신 그분의 품성과 같아서,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성경이 당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그 책 가운데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존재, 그분의 품성, 그리고 그분의 말씀의 진실성은 우리의 이성에 호소하는 증언에 의해 확증되며, 이런 증언은 많이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의문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지 않으셨다. 믿음은 실연(實演)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증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있으나, 진리를 알고자 갈망하는 자는 신앙을 가지기에 충분한 근거를 발견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해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할 이유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천연계의 경이적인 것들에 항상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면, 영적 세계에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오묘한 것이 있다고 하여 놀랄 것인가? 문제는 오로지 사람의 마음이 우둔하고 좁은 데 있는 것이다.
성경의 오묘함은 그 자체를 반대하는 논증 거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만일, 성경에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기록되었든지, 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존엄하심이 유한한 사람의 마음으로 파악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처럼 신성에 대한 명료한 증거를 갖지 못하였을 것이다. 성경의 위대한 주제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고무시킬 것이다.
성경은 가장 교양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매혹시켜 온 그런 단순하면서도 인간의 욕구에 적합하게 들어맞는 방법으로 진리를 나타내는 한편, 비천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행로를 명백하게 밝혀 준다. “이 길의 행인은 우매하나 실로치 아니할 것이며(난외 주)”(사 35:8). 그러므로, 어린 아이라도 그 길을 잘못 들 이유가 없다. 떨면서 조심스럽게 길을 찾는 사람 중 한 사람도 그 깨끗하고 거룩한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장 단순하게 진술된 진리의 말씀은 인간의 이해력을 무한히 초월한 고귀하고 원대한 주제들, 하나님의 영광이 감추어져 있는 오묘들 그것을 탐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지만,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경외심과 믿음을 고무시키는 오묘들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을 상고하면 할수록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깊어지고, 사람의 이성은 하나님의 장엄한 계시에 머리를 숙인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찾는 자에게 언제나 그 말씀의 진리들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신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인 반면에,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신 29:29)한 것이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여러 진리를 소홀히 하도록 이끌었다. 성경의 오묘들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감추어 두고자 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우둔함과 무지로 인하여 그것을 깨달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없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그 제한은 하나님의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에 있다. 깨달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자주 지나쳐 버리는 성경의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깨닫기를 원하신다. “모든 성경은” 우리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시려고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 17) 주신 것이다.
사람의 두뇌로서는 성경의 한 진리나 한 허락이라도 속속들이 규명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이런 관점에서 말씀의 영광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은 저런 관점에서 말씀의 영광을 발견하지만, 우리는 그저 희미한 빛을 발견할 뿐이다. 그 충만한 광휘는 우리가 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위대한 것들을 숙고할 때에, 우리는 눈 아래로 깊고 넓게 전개된 원천을 볼 수 있다. 그 넓이와 깊이는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다. 이를 주시하면 할수록 시야는 넓어져서, 눈앞에는 끝없는 바다가 한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연구는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능력이 있다. 두뇌와 정신이 새 힘과 새 생명을 얻는다.
이러한 경험은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최대의 증거가 된다. 우리는 육신의 양식으로 떡을 섭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심령의 양식으로 받는다. 떡은 우리 체력의 필요를 채운다. 우리는 그것이 피와 뼈가 되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이같은 시험을 성경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성경의 원칙이 실지로 품성의 요소가 될 때에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그 생애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능력으로 죄된 습관의 사슬을 끊어 버렸다. 그들은 이기심을 버렸다. 하나님을 모독하던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주정뱅이가 술을 삼가게 되고, 방탕한 자가 순결하여졌다. 사단의 형상을 지녔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바 되었다. 이 변화는 그 자체가 이적 중의 이적이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오는 변화는 말씀의 가장 깊은 오묘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성경에 언명된대로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고 하신 대로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이 오묘에 대한 지식은 모든 다른 오묘를 푸는 비결을 제공한다. 그것은 사람에게 우주의 보고 즉,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또한, 이 발전은 하나님의 품성 곧 기록된 말씀의 영광과 오묘가 우리에게 항상 나타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진리의 발견도, 더 이상의 지식도, 더 이상의 발전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존재가 되지 못하며, 사람의 진보는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분께서 무한하시고 그분 안에 모든 지혜의 보배가 있는 까닭에, 영원토록 끊임없이 탐구하고 계속하여 배울지라도 그분의 지혜, 자비심, 그 능력의 부요함을 결코 다 알 수가 없는 것이다.”-교육, 168-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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