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A개혁운동 한국합회
처음으로성경학교건강한 삶참된교육출판for SDAs소식자료실  
아이디 : 
비밀번호 : 
Member_Registration_Process
 복음의 보물 
복음의 보물(1980년판) 복음의 보물(1980년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시리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시리즈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E. J. 와그너 목사는 원래 직업이 의사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이었다. 그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학생이었는데 개인의 구원에 관한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깊이 고민하던 중 어떤 영적 집회에서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그의 고백가운은 증언한다. 그 후 그는 십자가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깊이 있는 성경 연구를 통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고 의사 직업을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여기에 올리는 주석은 와그너의 로마서 강해를 번역한 것으로 매격월간 출간되는 진리의 기둥과 터에 시리즈로 연재되고 있다. 로마서 강해 (E. J. 와그너) 
 갈라디아서연구 
 히브리서 연구 (A. T. 존스) 
주옥같은 구원의 설교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 구원의 설교 
주님이 사랑하십니다

세종류의 안식일 ModifyDelete


by E.J.Waggoner


사람들이 많은 신들에 대해서 말 할 수 있는 것처럼 진리 안에서 사람들은 복수형으로 안식일들에 대해 말할수 있다.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리라” 고전8:4-6 비록 그렇게 불리우는 여러 종류의 안식일이 있으나 참 안식일은 하나 뿐이다.

주님의 안식일
이 “안식일”이라는 단어의 뜻은 “쉰다”는 말에서 온 히브리어를 영어로 옮긴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안식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우리가 ‘쉰다’는 생각을 하는것처럼 같은 생각을 시사하고 있다. 네 번째 계명이 사실상 우리에게 말할 때 “쉬는날”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일 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쉬는 날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내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동안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쉬는 날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8
우리는 사람들이 흔히 쉰다고 하는 말과 주님의 쉬쉼을 판단하는 일에 잘못을 범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쉬심의 참 의미를 배워야만 한다. 하나님의 쉬심은 피곤함으로 육체가 단지 쉬었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는 “하나님은 영이시다”요4:24 “하나의 영혼”이 아니요, 그분은 많은 사람중 하나와 같은 그런 영이 아니라 개역성경 난외주에 나오는 것처럼 영적인 분, ‘영을 제공 하시는 분’이시다. 둘째는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시40:28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분이 피곤하셔서 쉬신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분의 쉬신 것은 육체의 쉬심이 아니라 영적인 쉬심이며, 그분이 영적이신분 이기 때문에 ‘그에게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쉬신 것은 피곤해서가 아니요 그분의 일을 마치셨기 때문이었다. 일이 마쳐질때 그것이 잘 이루어 졌을때 쉬는 것 만이 남게 된다. 엿새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셨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매우 좋다’고 하셨다. 거기에는 흠이 없었다. 그분 앞에는 결점이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이 마치시고 엿새가 끝나갈 때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그가 지으시던 모든 일이 일곱째날이 이를 때에 마치시니 일곱째날에 쉬시니라’ 그분은 슬픈 반성이나 후회가 없으셨다. 그분의 쉬심은 결점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주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내일 그일을 다시 해야한다’. 혹은‘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해야겠다’. 혹은 ‘만일 이일을 다시 하게 된다면 개선해 보아야지’ 또는 ‘어제 일은 형편 없어 못봐 주겠어’ ‘나는 그일을 절반도 못했는데 너무나 피곤해’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으셨다. 모든일에 있어서 사람까지도 모두가 완전 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흠이 없고 완전하였기 때문에 그분께서 쉬시며 바라보시는 일로 순수한 기쁨을 취하셨다.
이것이 그분이 우리들에게 제공하시는 안식(쉼)이다. 이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부과시킴이 아니요 그분께서 영원하신 사랑과 친절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쉼이란 사람에게 부과 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짐이 아니다. 안식일을 짐과 같이 보는 사람은 주님의 안식일이 땅위에 있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시33:6 그러므로 그는 이 안식(쉼)을 우리에게 제공 하신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분은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안식(쉼)은 그분 안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이 성취(다 마쳐졌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요 만일 누구라도 그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주님의 일을 끝마침으로부터만 올 수 있는 완전한 안식(쉼)을 그분의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다.
이 안식(쉼)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쉼)에 들어가는 도다. 어떻게 그런가? - 왜냐하면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의 완전한 일을 우리 자신의것과 같이 마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다.요6:29 그 분을 믿는다는 의미는 그분을 그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은 마쳐졌기 때문이다. 그분을 믿을 때 우리는 쉼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따라오는 것이다.
예수께서 주시는 쉼은 죄로부터의 쉼이다. 그분이 그분 자신에게로 초청하는 자들의 무거운 짐은 저들의 죄의 무거운 짐들이다.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이 짐을 졌는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최선의 일(행함)은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을’딛2:14,15 가지실 것이다. 그러나 선한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것이어야 한다. 오직 그분의 일(행하심)만이 영속적이다. ‘그분의 행하심은 존귀하고 영광스럽고 그 의가 영원히 있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 은혜을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든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딛3:5,6 그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일)에 의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우리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선한 일은 풍성함 안에 있고 그것은 또한 우리를 위함이며 그러나 우리 자신의 행함(일)으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일을 통해서 뿐이다. 만일 우리 자신의 행함으로라면 안식(쉼)도 우리 자신의 것일 것이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쉼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일(행하심)만이 완전한 쉼(안식)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놀라운 일(행하심)을 ...기억케 하셨으니 혹은 말씀 그대로 ’그분의 놀라운 일(행하심)을 기념하도록 만드셨느니라‘ 시111:4 그 기념은 일곱째 날이다. 그 날은 그분이 그분의 일(행하심)로부터 쉬신 날이다. 그 날을 그분은 복 주시고 성화하게 하시고(Sanctified), 거룩하게(Holy) 만드셨다. 그 거룩함은 그날로부터 결코 분리(떠나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사람이 그날을 어떻게 대한든지 그 거룩함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런즉 안식(쉴때)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그분의 쉼(안식)으로 선언하신 일곱째날은 그분의 쉬심의 완전함을 우리로 알도록 만드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끝내시고 완성시키신 새로운 피조물을 우리로 명상하도록 초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을 계시하며 피곤치 않으시며 사람의 아들들 앞에서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위대한 선을 저축 하시고 만드신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다.시31:19 “주를 두려워 하는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그것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 되신 분’ 그분 안에서 온전케 됨을 기억하게 해준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비록 우리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피조물에게 저주를 가져 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저주를 짊어졌고 하나님의 완전한 일을 회복 시키며 그렇게 함으로 그것을 통해서 우리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이 없이 서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며 마치 사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같이 의롭게 하시기 위함이다.“말 할 수 없는 그분의 은사(선물을)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하노라”.고후 9:15

유대인의 안식일
‘유대인의 안식일’ 혹은‘유대나라 사람의 안식일’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주님의 안식일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어떤 사람이 제 칠일을 지키면 그는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계명을 따라”안식일을 지키면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키는 지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의 안식일과 주님의 안식일 사이에는 사람과 하나님이 다르듯이 다는점이 있다. 설명해 보기로 하자! : “제칠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곱째날을 기념하는 주님의 안식(쉼)은 영적인 쉼인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이 주일중 일곱째날에 육체적인 수고로부터 쉴 수는 있으나 주님의 안식일을 지킨 것은 아니다. 주님의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다. 주 안에서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노동으로부터 쉰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주님의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결단코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대로 하나님의 쉼이란 오직 그분의 완전한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는 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나니’ 그러므로 비록, 주일 중 일곱째 날에 쉰다해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 신자로 구분하여 유대인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의 쉼(안식)은 그 자신의 쉼이지 주님의 쉼(안식)이 아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다른 점을 보고 있는가? 유대인의 안식일이 주님의 안식일과 같은, 주일 중에 같은 날에 해당 되더라도 그것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사람자신, 그리고 그 자신의 일(행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일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표를(징조) 지니는 대신 그것은 자신의 의의 표이며 마치 유대인들이 주님께 질문할 때 표현 했듯이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저들은 저들 자신의 일(행함)을 하나님의 일과 같다고 계산 하였다. 저들의 순종은 믿음에서 나온 순종이 아니었고 모양 뿐이었다. 이러한 안식일로부터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신다. 그것은 주님의 안식일 안에 우리를 구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우리 자신의 행함으로 구원 받으려 하나 주님께서는 주님의 완전한 행함(일)을 우리에게 주신다. “제 칠일은 주님의 안식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안식의 서투른 모방을 만드는 일에 주의하자! 우리는 주님의 안식(쉼)-그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알도록 하자!

법왕권의 안식일
이것은 어떤면에서 유대인의 안식일과 완전히 다르고, 주님의 안식일과는 극히 다르다. 주님의 안식일은 하나님 자신의 일을(행하심을)승인하며 그 안에서만 쉬는 것이다. 그분의 선하신 기쁜 뜻과 행하심 모두를 그분께 내어 드리는 것이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열성적이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행하신 일들을 자신이 행해 보려는 헛된 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법왕의 안식일은 선하게 되는(good)것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선하게 되려는(better),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행함으로 바꾸어 보려는 것을 상징한다. 그것은 비록 주님의 계명의 모양을 필요 없게 까지 하였다. 어떻게 그런지 우리는 보도록 하자!
주님의 안식일은 현재를 위하여 충분히 강조되어 왔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오직 믿음으로 소유 할 수 있는 실체 없이 주님의 안식일의 모양만을 준수 한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그것은 같은 날에 해당하지만, 사람의 안식일이요 주님의 안식일이 아니다. 법왕권의 안식일은 비록 모양까지라도 주님의 안식일과 일반인 것이 하나도 없으며 완전히 그것을 거부한다. 로마 천주교의 ‘참종교를 발견하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구원을 받는데 절대로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성경 어느곳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한다. 그것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원을 받는데 필수적인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단지 찾아 볼 수 있는 많은 유사한 인용문 중에 하나이지만 천주교회가 주님의 말씀에 반대 될 뿐아니라 그날 자체를 주님의 날 보다 더 높이고 있는 일요일 준수 안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그것은 주님의 안식일과 완전히 다른날 위에 저들의 안식일을 두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시작하신 이래 비록 하나님 자신도 그분의 안식일로 만드실 수 없는 한 날이며 - 이것은 하나님 위에 그것이 있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보다 교회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킴”의 필요성에 대해 인용된 말들을 주의해 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요일을 거룩하게 만드시지 않으셨다. 사실 성경은 이러한 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요일은 주일중 첫째날이며 로마가 두 날들을 합해서 한 날로 만들어낸 일하는 날로 불리우는 날인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말씀하신 오직 한날은 주일 중 일곱째 날인 것이다. 그날은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게 만드시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하게 지키라고 요구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요일을 거룩하게 만드시지 않았음에도 만약 사람들이 그것을 거룩하게 지킨다면 사람은 그 자신이 그것을 거룩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일요일이 가진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신성함은 사람이 그것에게 준 것이다. 그러므로 일요일 안식일은 사람이 그것을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생각을 대표한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한 날을 거룩하게 만들고 지킬 수 있다면 그는 그 자신도 거룩하게 만들고 지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법왕권의 안식일은 이와 같이 죄인들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주님을 대신한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이다.
제칠일이 그분 자신의 일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표가 되는데 일요일은 사람이 그 자신의 행함에 의해 그 자신을 구원한다는 사람의 꾸며진 능력을 주장하는 것이며, 완전히 주님의 능력과 그분으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법왕권의 일요일이라고 말 할 수 있으며,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주의하자! 수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주님의 안식일로 믿고 법왕권의 날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자들은 비록 저들이 부지중에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표를 지키고 있으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음을 믿는다. 이런 자들의 유익을 위해서 이글을 쓰고 있는데 저들로 하여금 저들이 공언하는 믿음과 모두 일치될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사실들을 다루고 있으며 어떻게 사람이 그것과 연관될 수 있는지 그리고 주님의 안식일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된다는 사실이며 법왕권의 안식일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뜻이며 사람이 자신의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느편에 설 것인가?
LIST REPLY

About US | Site Map | 정보보호정책 | Contact US | ⓒ 2018 Seventh Day Adventist Reform Movement Korean Field.